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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찍을 든 여성들_SM영화 소설 리뷰_사디즘과 마조히즘의 오늘

by jeroni 2014. 6. 4.



                                                   ⓒ영화 <모피를 입은 비너스> 제작 장면





채찍을 든 여성들

"여성들은 왜 채찍을 들게 되었나?"



                                                                                        ⓒ죠다쉬 청바지 광고


여자들이 어떻게 해서 채찍을 들게 되었나.

단순히 SM 플레이로만 얘기할 수는 없을 듯하다.


요즘, 

남자들 정신 똑바로 차려! 

하며 채찍을 휘두르는 여인들의 채찍 소리가 탁탁! 들릴 법도 하기 때문이다.


그간 남자들은 제 자리에서 대충대충, 윗선 눈치 보며

잘못해 왔다고 채찍으로 때릴 것만 같은 여인들. 하필 오늘이 투표일이기도 하다.

선거매를 아직 못 맞은 남자 당선자들은

채찍으로라도 맞아보고 정신을 차려 보자!


1. 사디즘 그리고 마조히즘. 그것이 왜 현대에 존재하는가?

장정일이 예전에 쓴 소설이 있었는데, 남자는 30대쯤 화가이고 여자는 십대 여고생이었던 듯하다(틀리면 댓글로 얘기해줘요.) 여고생이 한참 삼촌일 남자를 몇 가닥 한데 묶은 회초리로 때리는 장면이 등장한다고 했다.

이런 장면 때문에 그 당시에 판금이 되었다는 설이 있으니 요즘의 안목으로 보면 참 조선시대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너무 오래 전의 사건이라 기록으로만 알고 있다.

장정일은 법정에까지 갔고, 자신의 변에서,


"큰 권력을 가진 남자들은 뭔가 외부에서 나쁜 일들을 하고, 그것은 묵인되고 하는데

그 죄책감을 채찍으로나마 맞는 플레이를 해서라도

씻으려는 욕구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이유로 사디즘과 마조히즘을 즐기려는 남자들이라면  

플레이일 뿐이므로 세게 맞으려는 것이 아니고 여성 파트너에게 흉내만 내게 할 뿐이다.

그 여성도 고용된 업소 여인일 것이므로.

장정일의 말도 일가견이 있는 말 같다. 그리고 장정일은 선정적인 그 때리고 맞는 자체를

성적으로 이용하진 않고 정치적으로 이용했던 것 같다.




하지만 본 블로거 뒹구리는 때리고 맞고 하는 것을 좀 더 성적으로 얘기하고 싶다.

질르 들뢰즈는 사디즘이나 마조히즘(메저키즘)은 엄연히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사디즘은 존재할 수 있으나

마조히즘은 아니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맞으면서 쾌락을 느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는 게 그의 주된 근거였다.


히틀러 같은 전체주의 사디스트나 일본제국주의들이라면 타민족을

괴롭히는 데서 만족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엄연히 말했을 때 1대 1로 누군가를 괴롭히는 데서는

쾌락이 존재한다기보다는 불편함이 존재하는 듯하다.

그 1대 1일의 순간에도 적어도 맞는 사람은 쾌락이 있을 수 없다.


그래서 SM은 놀이라고 봐야 한다고 본다. 거기서 섹스와 같은 느낌의

쾌락이 존재한다기보다는 연극적인 즐거움이 존재한다고 봐야 한다.


하나의 씻김굿이며 일상의 억눌린 억압의 해소적인 측면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왜 SM 플레이에서는 보통 약자가 강자가 되고 강자가 약자가 되는 그런 플레이를 하는 경우가 많지 않던가.

평소 남편이 못 했다면

아내는 때리는 역할,

남편은 맞는 역할,




2. 그러나 진짜 때리는 여자들도 존재한다. 사랑하건 말건.





영화 <Call her Savage>(1932) 중에서.

하인에게 채찍을 휘두르는 나사 싱어.  











위의 영화는 순간적 위기감을 극복하기 위한 필요에 의해서 채찍을 들게 되는 경우이다. 

하지만 계약에 의해서 채찍을 드는 여성들이 있다.


바로 <모피를 입은 비너스>의 경우가 그렇다.






 

영화 <모피를 입은 비너스> 중에서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는 <모피를 입은 비너스>를 어느 정도는 

성 전환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모피를 입은 비너스> 라는 영화는 마조흐 백작의 <모피를 입은 비너스>의 소설을 영화한 것이다.


난 책을 번역본으로 읽었는데 여기서 두 남녀의 계약관계는 추상적으로만 밝혀져 있다.

그리고 계약의 구체적인 내용은 기술 되어 있지 않았다. (혹시 오역본을 읽었나 해서 이 부분이 걱정이긴지만)


여기서 남자는 저 여자를 사랑하기 때문에 기꺼이 노예가 되려고 한다.

작가는 자신의 실제 경험을 이 소설로 썼다고 하며 그 사랑은 이뤄지지 못했다고 한다.

  


3. 계약에 의해 때리는 여자들이 존재한다.



바로 최근에 나온 <천궁>이라는 독특한 소재의 소설이다.

이 책에 대한 오해가 많은 듯해 몇 자 적어본다.


여기에는 모피를 입은 비너스와 달리 구체적인 계약 조항이 존재한다. 몇가지만 살펴보면


....

X조) JO의 기분이 언제나 최적의 상태로 유지될 수 있도록 애쓴다.

X조) O는 훈육을 위해 독특한 방법을 사용할 수 있고 J는 방법상의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다.

X조) OJ의 정진을 위해 체벌을 가할 수 있다.

X조) J는 목적이 완성될 때까지 다른 이성과 잠자리를 할 수 없다.

X조) 강력한 지도의 필요로써 훈육이 플레이되는 시간만큼은 JO에게 예속된 신분으로 주인님O가 허락한 호칭 외는 불허하며 진심어린 존경과 충성을 다한다.

....




여기서 여자는 때리는 갑이다. 그것도 수퍼 갑이다. 

남자는 을도 아닌 병이나 정 정도의 한참 부족한 을이다.

그것은 두 사람의 계약 때문이다. 

여기서는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다. 여자가 남자를 처음에 사랑하기는 했다. 하지만 차츰 계약 관계로 변했다. 

SM 플레이도 처음엔 아닌 듯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책이 잡혔는데

공동의 목표를 위해 채찍을 드는 경우이다. 

그러는 과정에서 마침내 서로

그 플레이를 즐기게 되고 수단으로서 이용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여자의 채찍 다루는 솜씨가 프로급으로 묘사돼 있어 남자들이라면 그냥 맞는 것보단

좀 예술적으로 맞고 싶은 맘이 들지 않을까 걱정이게 한다. 



한 장면을 살펴보자. 아마 위처럼 처음엔 채찍을 쥐고 있지 않았나 여겨진다.


민준이 더욱 놀란 것은 그녀의 팔목에 뱀처럼 휘감겨진 물체 때문이었다. 일명 ‘Bullwhip’라는 긴 황소몰이용 채찍이었다. 채찍의 손잡이를 쥐고, 손잡이와 이어진 두꺼운 부분을 고리처럼 둥글게 하고, 그 나머지 가늘어지는 부분은 팔목과 팔뚝에 휘휘 감고 있었다.

가죽 소파는 그녀의 바로 뒤, 무겁게 드리운 커튼 앞으로 옮겨져 있었다.

대체 무, 무슨 일이세요? 세희 씨.”

민준이 놀람을 금치 못하고 말했다.

무릎 꿇어. 그리고 이제부터 주인님이라고 불러.”

빨간 입술에서 차갑고도 위엄 있는 전혀 다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제가 뭘 잘못했는데요?”

민준은 납득이 안 간다는 듯이 물었다.

지금은 계약서대로 독특한 훈육의 시간이야. 첫 번째는 정진이 부진해 채찍을 든다, 어서 무릎을 꿇어.”


(*책정보: 알라딘, 예스24, 리디북스, 구글북스 등 참조)


여기서 세희라는 여자는 채찍을 전문적으로 다루고 그것을 두 남자에게 휘두른다. 한 남자에겐 허리띠로, 한 남자에겐 황소몰이 진짜 채찍으로. 한 번은 필요에 의해 들고, 또 한 번은 계약을 이행하기 위해 든다.

이 작품이 즐거운 플레이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남자인 타인에게 고통을 주기 위한 것인지는 독자의 몫이지만, 아무래도 사랑의 다른 형태 같다.

아무튼 우리나라에도 이런 소설이 나오고 있음은 표현의 자유나 약속된 플레이에 있어서 상상력을 발휘하게 하는

측면에서는 고무적이라는 생각이다. 이미 서구에선 수 백여년 전에 소설화 되었지만.

하지만 관점들은 계속 변화하고 장정일이 과거나 지금과 다르고, <모피를 입은 비너스>의 수백년 전 소설과 지금의 영화가 다르다. <천궁>은 또한 앞의 것들과 다르다. 

시대에 따라 사랑이 자꾸 변화하는 것처럼. 또 하나의 멋지고 즐거운 작품들이 쏟아지길 바라며.


채찍 문학과 만화나 영화에 대해서 또 다른 포스팅을 해볼 기회가 있길 바랄 뿐이다.



 ⓒlashers 란 게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