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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모음

현대의 프랑켄슈타인, 2012 뇌과학 소설 『프라이온』

by jeroni 2012. 9. 18.

‘프라이온’이란 광우병으로 유명한 인체감염원이자, 뇌에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기억에 관여하는 단백질이다. 핵산을 가진 복제 가능한 바이러스는 아니지만, 이 물질은 단백질 성질을 가진 감염을 일으키는 입자(proteinaceous infectuous particle. Prion)이다.

그런데 2011년 여름, 전자책으로 먼저 선을 보인 의사 작가 조재림의 <프라이온>이란 소설 속에는 이 감염형 프라이온을 수혜자의 뇌에 직접 투여하는 실험이 등장한다. 작가는 어떻게 뇌에 스펀지처럼 구멍을 송송 뚫어버리는 이런 위험한 물질을 살아있는 인간에 직접 투여하는 발상을 해냈을까. 그것의 실험 대상이나 메커니즘도 매우 엽기적이며 기발하여 작가의 상상력에 경악을 금치 않을 수 없다. 2012년을 배경으로 하는 미스터리 형식의 의학 소설이라 이 자리에서 모두 밝힐 수 없지만, 프라이온 추출 대상이나 방법, 실험 대상은 상상 이상으로 끔찍하다. 소설에는, 공여자인 살아있는 인간의 싱싱한 프라이온 추출법 두 가지가 등장한다. 하나는 고전적인 두개골 절단과 비슷한 형태로 이루어지는 것, 다른 하나는 ‘키홀 수술’이라 불리는 것. 그리고 생생한 뇌에서 날것으로 추출한 프라이온을 첨단적으로 투여할 수 있는 획기적인 투여기가 등장한다. 

살아있는 공여자와 수혜자를 매칭해 프라이온을 주입하는 이와 같은 방법을 사용하면 정말 이 소설의 이론처럼 치매나 뇌사자, 기억력의 향상 등, 인간의 뇌에 획기적인 변화가 생길지 궁금하다. 윤리위원회 회부는 차치하더라도 그런 실험이 성공 여부는 뇌과학과 의학계의 논란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재빨리 책을 읽고 누군가 미리 책 속의 프라이온 투여기에 대한 특허권이나 광우병을 일으키는 위험한 프라이온을 인간에 오히려 득이 될 수 있게 한 최신 연구 성과에 집중해볼 만하다.  


                                  뇌과학소설 『프라이온』


 <프라이온> 소설 속 주인공은 뇌사자를 살려내거나 치매환자나, 획기적인 기억 능력 항진에 일반인들이 보기엔 도저히 상상하거나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특이한 인간 ‘공여자’의 뇌로부터 얻은 프라이온을 사용한다. 여기서 여의사인 주인공이 프랑켄슈타인이나 공포영화 속에서와 같은 기절초풍할 실험을 할 수밖에 없었던 또 다른 배경은, 소설 속에 점차 실체를 띠기 시작한다. 또한 주인공이 끔찍하고 몸서리처지는 이 남성의 뇌신경발화패턴 연구에 쓰였던 도구 또한,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태어난 정말 그럴 듯한 물건이다.

 

"여주원은 서울정신병원에서 정신과 전문의로 일하면서 병원 부속 뇌과학 연구소에서 분자신경정신의학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녀의 연구팀이 개발한 뉴로넷(신경전달물질 회로망 영상장치―NEURONET. Neurotransmitter Network Imaging)은 신경전달물질에 표지자를 붙여 인체에 투여한 후, 각 신경전달물질의 신경회로망을 볼 수 있게 만든 영상 장치로 상용화되지는 않았지만, 정신질환이 증상을 통해서만이 아닌 영상을 통해 진단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전 뇌 영상장치는 어떤 일을 수행하거나 감정이 들 때 발화하는 뇌 부위만 알 수 있었는데, 이 뉴로넷은, 신경전달물질은 여러 가지 종류가 있고, 같은 물질이라 해도 다른 경로를 갖고 있다는 것에 착안해서 신경전달물질에 표지자를 붙여 발화하는 신경회로망을 영상화하여 뇌 부위 간의 연결성을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_본문

 

또한 실험을 위해 희생양인 공여자를 뇌 부위를 채취하는 아래와 같은 소설 속 장면은 여름용 의학 스릴러 영화처럼 끔찍함을 더하고 있다. 작가가 의사이기 때문에 저렇게 실랄한 묘사가 가능하리라.

 

주원은 이충섭이 누워 있는 카트를 끌고 수술실로 들어왔다. 이충섭의 몸에는 정맥선이 연결되어 있었고, 일정한 속도로 마취제가 주입되고 있었다. 주원과 서윤은 수술용 베드 위에 이충섭을 눕히고, 팔과 다리를 붕대로 묶었다. 그리고 서윤은 한쪽 귀 끝에서 반대편 귀 끝까지 두피를 절개한 후 피부를 얼굴에 덮고, 두개골 위에 수술용 톱을 올리고 썰기 시작했다. 뼈가 쓸릴 때마다 뼛가루가 떨어졌고, 핏물과 뼛가루는 섞여서 찐득찐득해진 상태로 바닥에 눌러 붙었다. 라텍스 장갑은 이내 땀에 젖어 서윤의 손등에 달라붙었다. 쓱싹쓱싹 뼈가 갈리는 소리와 마스크로 뜨거운 숨을 뱉어내는 소리만이 수술실을 채웠다. 예상보다 시간은 지체되었지만, 드디어 두개골이 쩍 하는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주원은 베드를 접어 이충섭이 앉은 자세가 되게끔 만들었다.

“윽!!”

그 때, 갑자기 이충섭이 눈을 뜨고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기 시작했다. 근육이완제를 주입했기 때문에 몸을 완전히 움직이진 못했지만, 손가락과 발가락을 조금씩 까딱거리기 시작했다. 서윤은 이충섭과 눈이 마주친 순간, 그의 핏발선 공포와 두려움이 자신의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_본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