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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껌소설(장르)

간호사 섹스의 모든 로망이 집약된 성인로맨스 :병원에서 행복한 날들

by jeroni 2013. 12. 29.



차우모완 《병원에서 행복한 날들》

 

우리는 첫눈에 반한 사랑에 대해 말하곤 한다. 누군가는 그런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성욕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첫눈에 반한 사랑은 사랑일까 욕망일까. 차우모완의 신작 소설 《병원에서 행복한 날들》은 첫눈에 반한 순간부터 여름보다 뜨거운 연애를 시작해버린 두 남녀의 사랑이 변해 가는 모습과 이성이 망각한 육체의 기억에 대해 다루고 있다.

 

육체부터 격렬하게 타오른 사랑.

 

그래서 사랑을 더 이상 이어갈 수 없던 젊은 두 남녀. 사랑 없이 서로 겉모습과 육체적 매력, 첫 느낌에만 반해 연애의 과정을 모두 생략한 채,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우연히 동침부터 하게 된 두 남녀. 두 사람은 종합병원의 여러 공간을 무대로 서로 스릴감 넘치는 격렬한 사랑을 나눈다. 소설 속 여자에겐 이름도 없다. 단지 ‘그녀’이다. 남자도 이름이 없다. 그저 ‘그’이다. 작가는 현대 사회의 익명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소설 속 모든 인물들에 대해 희한한 별명을 사용한 인칭을 쓰고 있다. 여전히 서로의 겉모습 외엔 알려고 하지 않는 간호사와 환자인 남자. 이들은 미로 같은 종합병동의 여러 장소에서 오직 육체의 관계로만 만나왔기에, 이젠 서로에 대해 육체적 신비감마저 없다.

 

폭풍 같은 사랑 뒤의 쓸쓸함.

 

사랑이 그렇듯 두 남녀는 각자의 길을 간다. 폭풍 같은 사랑 뒤의 쓸쓸함만 안은 채……. 그리고 중독된 듯, 남자는 영혼이 없는 육체의 사랑이 채우지 못한 외로움을 다른 육체로서 채운다. 여자도 다른 남자가 이미 있는 듯하다. 남자는 여전히 종합병원에서 또 다른 이와 사랑을 한다. 하지만 역시 다른 이성과도 육체적 만남에만 의존하는 생활일 뿐이다.

   




차우모완 2013 신간| 병원에서 행복한 날들

 

그러나 사랑은 육체적 쓸쓸함 뒤에 비로소 시작되는 것.

 

사랑은 쓸쓸함 뒤의 것인가. 운명적 인연은 그런 씁쓸한 여운 뒤에도 시작될 수 있는 것일까. 만나고 차를 마시고 영화를 보고 손을 잡고, 교감을 나누고, 그런 뒤에야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사랑의 행위를 나누고, 서로 사랑을 유지해가고 신뢰를 쌓아가고. 이런 순서가 정반대인 사랑은 이뤄질 수 없는 것일까. 낯선 이들이지만 서로에게 반해 먼저 타올라버린 사랑은 장작불처럼 꺼지기만 하는 걸까.

 

두 남녀의 헤어짐 뒤, 찾아온 서로의 육체적 기억에 대한 쓸쓸함. 그러나 아주 작은 의지나 계기가 운명을 바꾸기도 한다. 쓸쓸한 육체에 대한 기억만 안은 채, 서로 헤어질 뻔한 두 남녀는 아주 작은 우연으로 서로 다시 연락이 된다. 육체도 기억과 그리움의 기능이 있었기 때문일까. 소설의 마지막에서선 이런 두 남녀가 먼 여행을 떠날 수 있을 것임이 암시된다. 이런 작가의 연애관은 급변하는 요즘 젊은이들이 겪을 수 있는 낯설고 새로운 사랑의 패턴이나 그 의미를 묻고 있는 듯하다. 작가의 문학적 감수성과 열정, 실험성이 한여름 태양만큼이나 뜨거운 신작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