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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껌소설(장르)

남자들이 수퍼우먼을 좋아하는 속사정③

by jeroni 2014. 2. 23.

앞의 포스팅들에서 작금의 남자들이 왜 자신보다 월등한 여자를 좋아하는지 라노벨이나 만화, 팬틱 등으로 

살펴 보았어요. 일관성이 없는 포스팅이었지만, 나름 흥미로운 그림들에 매료가 되었습니다.


워낙 큰 여자들은 언급하기 부담스러워

이제는 현실의 여자들을 언급하는 게 마지막 순서로 적당한 것 같아요.




 


요렿게 큰 거인 여자들에 관한 팬아트 등은 이제는 접고요. 일본의 <축소 학원>이라는 게임에 관한 일러스트라고 합니다. 메가, 기가, 테라 여성들은

 현실적으로 신의 존재 여부를 밝히는 것처럼 불가능한데, 남자가 작아지는 것은 현실에 더 가깝지 않을지.

현재의 유전공학은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지도 모르니까요. 








관음증적인 면이 있군요. 이 코드는 역시 관음증이 지배적인 코드인 듯해요. 여자들로선 좀 불편한 코드라서 남자들이 좋아할 요소일 듯합니다.


그럼 남자들은 왜 이런 장르를 좋아할까 궁금해집니다. 


개인 적인 분석인데 공감이 안 될 수도 있지만


첫째. 여권 신장입니다.

모든 면에서 남자들과 동등해지고 있는 여권의 신장이 여성들을 남성들보다 낮은 위치가 아니라 동등한 위치에서 더 나아가 모시는 위치. 을에서 갑의 위치로 격상하게 되면서 여성들의 존재가 몹시 신적으로까지 발전한 케이스가 아닌지... 이젠 여성들은 군대에까지 관여하고 있고, 아들을 군대에 보낸 엄마들이 부대를 감시하고 있고, 인도나 동아시아엔 여성 장교들이 많으며 실질적으로 한 나라의 군대까지 좌지우지 한다고 합니다.

자이언티스(GIANTESS. GT)가 관음증만 빼면 페미니즘 문학장르가 될 수도 있긴 하지만 여전히 '장르'로서 남아 있는 건 남성향 문학이기 때문인 듯합니다.


둘째는 남성들의 위축입니다. 물론 위와 연장선상이긴 하지만

현재의 남성들은 많이 스스로 저하된 듯합니다. 남자들의 초혼 상대가 돌씽인 경우가 과거에 비해 많아진 것만 봐도

능력 있는 여성, 여신처럼 모실 수 있는 지위의 여성을 선호 경항이 나타나는데. 

자신이 돌씽 여성보다 어리다는 이유로 의지하려 하고 엄마처럼 보살펴 주거나 예속 되는 것을 기꺼이 바라는 경햠은 좀 그렇지 않을까. ㅎㅎ 편하게 결혼생활하려고 돌씽과 결혼하는 연하 남자들도 있다는데 각성을 ㅋㅋㅋ


셋째는 남성들의 성적인 기호입니다.

비디오는 사랑에 대한, 이성에 관한 환상을 깨드려 놓았다지요.

앞에서 관음증을 논했는데, 그보다 나아가 여성들의 신체를 더욱 더 가까이

더욱 더 온몸으로 느끼고 싶어하는 남성들의 왜곡된 바람의 산물이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어요.


아무튼 한국의 <마이 러브 포켓 보이>는 문제작임이 분명합니다. 수지는 능력 있고 강하며 똑똑해서

예술가 스타일 남자나 연약한 남자, 숫기가 없는 남성들이 좋아할 타입입니다.

그러나 위에서 세 개로 언급한 경향만으로 이 작품을 즐길 수 없는 것은

사랑의 의미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해 봤어요. 


크기나 외모에 관계 없이 '사랑'은 역시 정신적인 어떤 작용이 분명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고,

작은 남자, 또는 너무 큰 여자, 또는 너무 크거나 한 남자나 너무 작은 여자

관계없이 서로 간에 교감을 하는 부분이 만나기 때문에 

이런 것을 초월한 사랑이 이뤄지지 않나 생각해 보게 했습니다. 


로얼드 달은 <My uncle oswalde>에서 작은 남자에게는 이성을 즐겁게 해주는 특별한 기술이 있다고 했는데,


그러니 너무 이성의 사이즈나 외모에 집중하지는 말고 사람마다 개성과 장점을 사랑하는 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물론 남자도 마찬 가지이고요.

외모는 성형외과 의사 집단이나 미용 관계 집단들이 인간의 미를 표준화하여 자본적 이득을 취하여 하는

상업성의 산물이라고 하는 논리도 있는데, 표준에 미치지 못하면 왕따나 열외를 시키는 

사회는 진정 외모로 돈만을 벌려는 사회이지 않을까요.


외모가 표준이지 못하면 열외를 시키는 관습은 감시의 산물이며, 몰카처럼 인간이 스스로 의식하지 않아도

무의식 중에 스스로를 감시하게 하는 놀라운 <1984>와 같은 전체주의 감시사회를 만드는 작용을 하는 듯해요.



     

지금까지 <마이 러브 포펫 보이>(MY LOVE POCKET BOY) 이 하나의 작품에서 생각해본 긴 포스팅이었네요. 작가의 작품이나 의도를 왜곡하지나 않았는지 염려되는 부분도 있지만

결국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었지 않았나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