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비밀스런 성적 콤플렉스, 페티시즘, 브와이에, 청소년기의 동성애, 독특한 성적 편향과 취향, 성적억압이 빗어낸 빗나간 소유욕과 욕망…, 대중적인 요소와 지성적 요소 등이 어우러진 묘한 작품이다. 한국문학계의 그 어떤 작가도 이렇게 치밀하게, 그리고 완벽한 소설적 구성을 가지고 성을 담론화하고 상징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김영하나 장정일이라 할지라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주제를 표현하는 방식이 때론 노골적이지만 그것을 적절하게 승화시키며, 진실로 말하고자 하는 의미는 작품의 전체적 구성으로 효과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차우모완 {그 해 여름 갑자기}
남자는 남자로서, 여자는 여자로서 지니고 있는 성적 상징(심벌)은 그것이 원초적인 기능을 제대로 완수할 때 인간의 무한한 자유가 담보된다. 그래서 소설은 남자와 여자로서의 심벌이 위기에 처한 남녀들이 그것의 생명성을 회복시키기 위한 탐구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오래 전 언니와 불완전한 관계에 놓여 있던 한 남자는 세월이 흐른 후 우연히 동생을 만나게 되고 동생은 남자와 진정한 의미의 사랑을 완성한다. 소설의 주인공들은 우리 몸의 완벽한 기능으로서의 신체가 주는 자유와 행복을 요즘 세대들답게 부끄럽지 않고 적극적이고 과감하게 모색하고 있다.
이 소설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몸의 완벽한 기능이 선사하는 축복과 찬사에 대한 것이다. 자신도 여태 몰랐던 자신의 몸에 대한 남녀 각자의 이해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몸과 그것이 지닌 자유와 생명성 회복에 대한 이해는 두 남녀가 마지막 장면에서 한밤중 나체로 왈츠를 추는 모습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오랜 동안 상실과 비밀에 싸여 있었던 각자의 몸은 한사리 그믐밤의 밀물처럼 피가 뛰놀며 생명력을 찾고 ‘부풀어 오른다.’
소설은 외딴 장소에서 벌어지는 두 여자와 한 남자의 애욕과 일탈적 사랑과 증오, 욕망을 향한 모의를 그린 D. H. 로렌스의 <The Fox>와 비슷한 설정을 하고 있다. 두 자매와 한 남자에 얽힌 기묘한 사랑과 어느 한적한 바닷가에서 벌어지는 의문의 사건들을 소재로 한 이 소설은 또한 서스펜스의 거장 윌리엄 아이리시의 문학을 떠올리게 한다. 아이리시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치열함과 시적 긴박감, 삶에 존재하는 낯섦과 섬뜩함 등이 자주 등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언급한 어떤 외국 작가나 작품들과도 유사하지 않다. 한국문학과는 더더욱 닮지 않았으며 우리문학사에 이런 작품은 존재한 적도 없다. 도저히 결합할 수 없는 소재들의 결합이 작품 전체에 독특한 이미지를 낳고 있다. 예술계의 학 특성인 장르 간의 혼합 성격이 어느 작품보다 강도 높고 묘하게 어우러져, 수많은 긍정적 해석과 파장을 만들어낸다. 장르적 영향력뿐만 아니라 예술가들에게 수많은 영감과 깊은 인상을 남기는 작품이 될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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