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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책들 사이, 보석 같은 책

장마철에 더욱 오싹한 공포소설 찾아보기: 파옥초 <는개>

by jeroni 2013. 6. 18.




여름의 끝자락.

는개가 내린다.


몸서리 처지는 한기에 등골이 오싹했다.

엊저녁 열어두었던 창문을 타고 스멀스멀 들어오는 새벽.

창가 귀퉁이에 부끄러운 듯 앉아 세상을 바라보는 화병 속 데이지 꽃들.

빗줄기가 세상을 부드럽게 노크하는 조용한 아침을 맞이했다.

반쯤 열린 창밖의 풍경은 안개가 낀 듯 뿌옇게 보였다.

습한.

축축한.

기분 나쁜 공기를 폐 속까지 들이마시며 잠에서 깨어났다.

열 평 남짓한 독신자용 원룸 방 가득 들어찬 축축한 곰팡이 냄새에 불쾌해졌다.


남자는 잠의 울타리를 빠져나오려 발버둥을 쳤다. 습관적으로 손을 더듬어 리모컨을 움켜쥐고 전원버튼을 눌렀다. 바보들의 신이 깨어났다. 보고 싶은 것만을 보여주는 네모난 상자가 눈을 떴다.

귀에 거슬리는 잡음만이 있었다.

출근길 교통정보도, 날씨예보도, 어린이 만화도 없었다.

오직 잡음뿐.

귀에 거슬리는 전자파 소리에 남자는 어쩔 수 없이 일어나 연결선을 확인했다. 선을 만지며 전원을 켰다 끄기를 몇 번이고 반복한 후 남자는 신경질적으로 전원 코드를 뽑아버렸다.

신의 침묵.

바보들의 왕이 눈을 감았다.

남자는 출근 전 침대 속에서 즐기던 짧은 아침 단잠을 놓친 것에 대해 아쉬움과 분노를 느끼며 부엌으로 갔다.

커피 한 잔.

담배 한 개비.

카페인과 니코틴을 맘껏 흡수한 남자의 뇌가 부르르 몸을 떨며 잠에서 깨어났다. 남자의 몸은 자동적으로 움직이며 출근준비를 했다. 피로에 찌든 어제의 패배자는 어느 샌가 오늘의 승리를 다짐하는 말끔한 양복차림의 회사원으로 변해 있었다. 손가락에 끼운 차 키를 돌리며 현관을 나섰다.


텅 빈 복도를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온 지하주차장.

남자는 눈앞의 광경에 순간 움찔했다.

텅 빈 주차장.

오직 남자의 은빛 고급승용차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음산함마저 느껴지는 지하의 공간.

흐릿한 형광등 조명이 만들어내는 빈 공간의 여백이 남자를 두렵게 만들었다. 남자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주차된 차를 향해 걸어갔다. 목 뒤에서 느껴지는 서늘함에 몇 번이고 어깨를 움츠리며 걸어가 간신히 차문을 부여잡고 운전석에 올라탔다. 남자는 안전벨트를 매다가 백미러를 힐끔 훔쳐보았다. 불안감에 직접 몸을 돌려 뒷좌석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후에야 시동을 걸었다.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무거운 엔진소리를 내며 차는 지상으로 나왔다.

남자의 시야에 들어오는 공허함.

안개인지 이슬비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가는 빗줄기.

하얀 장막.

분무기로 뿌린 듯한 물방울이 유리창에 맺혔다.

남자는 시야를 확보하기위해 와이퍼를 조작하여 앞 유리에 맺힌 수분을 제거했다.

공휴일? 아니야.

텅 빈 도로.

인적 없는 건물들.

마치 지구 최후의 인간이 된 듯한 고독함이 남자를 덮쳤다.

알 수 없는 두려움과 출근시간 시원하게 뚫린 도로를 달린다는 상쾌함이 남자를 당혹케 했다. 남자는 보조석에 손을 뻗어 의자에 걸린 양복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날짜를 확인하려했다.

시꺼먼 액정화면.

남자는 전방과 휴대폰을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이것저것 버튼을 눌러보지만 전원은 들어오지 않았다.

쿨렁.

타이어를 타고 남자의 응치 뼈에 느껴지는 고깃덩이의 느낌.

반사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아 차를 세웠다. 이미 물컹한 느낌은 척추를 타고 올라와 남자의 뇌를 마구 뒤흔들어 놓고 있었다.

소름끼치는 느낌.

남자는 일 년 전 죽은 고양이를 차로 밟았을 때의 느낌을 떠올리며 몸서리를 쳤다.

멍멍~

성대의 울림으로 봐서는 소형 애완견이었다.

다행히 살아있다.

남자는 일단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비상등을 켠 후 사이드 미러를 확인했다.

운전석 쪽 뒷바퀴 부근에 보이는 검은 색 치와와.

남자는 차문을 열고 왼발을 내밀어 아스팔트를 내딛었다. 치와와가 꼬리를 흔들며 남자에게 뛰어왔다. 마치 외국여행을 다녀온 주인을 오랜만에 만난 것 마냥 반가워하고 있었다.

터진 배에서 흘러나온 내장을 도로바닥에 끌며.

살갗을 뚫고나온 부러진 갈비뼈를 내보이며.

뛰어왔다.

남자는 황급히 문을 닫고 숨을 골랐다. 가속 페달을 밟고 정신없이 달렸다.

꿈이야. 이건 꿈이야.

남자는 쇼프로의 개그맨을 흉내 내듯 과장된 몸짓으로 자신의 뺨을 비틀어 꼬집었다.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아팠다.

그래 이건 꿈이야.


_파옥초 미스터리 공포소설 <는개> 도입부문. 본문 미리보기에서 스크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