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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는 새 책 읽기

한 소년에게 전부였던 소녀의 죽음/까만 섬

by jeroni 2012. 2. 25.

                                                                                    파옥초『 까만 섬』 


드디어 그것이 보였다.

아니겠지. 설마 아니겠지.

소년은 개울 밑바닥, 날카로운 돌 틈 사이에 숨어 있는 그것을 보았다. 미친 듯이 손을 뻗어 그것을 잡아당겼다. 팔목이 날카로운 돌 모서리에 걸려 찢어졌다. 상처 가득 생긴 손으로 그것을 조심스레 집어 들었다.

차가웠다.

웃고 있었다.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소년은 소녀의 으깨진 머리를 들어올렸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몸통은 보이지 않았다. 소녀의 머리를 가슴에 품었다. 죽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슴에 품었다. 자신의 따스한 온기를 나눠주고 싶었다. 감싸주고 싶었다.

아니겠지. 설마 아니겠지.

눈으로 보고, 두 팔로 품고 있었지만 믿을 수 없었다.

아니겠지. 설마 아니겠지.

결국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엉엉 울었다. 흐르는 개울가 한 복판에 두 발을 담그고 서서 엉엉 울었다.

손전등 불빛과 함께 사람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변호사와 경찰관 한 명이었다. 변호사는 이마의 땀을 손수건으로 닦으며 소년을 불렀다. 소년은 그저 울기만 했다. 경찰관이 손을 내밀었다.

“들고 있는 그걸 나에게 주렴. 중요한 증거물이란다.”

경찰의 말에 꼼짝도 않는 소년을 향해 변호사가 다시 말을 걸었다.

“나랑 같이 가자. 뒷일은 여기 경찰 아저씨한테 맡기고. 어서 나오거라.”

소년이 고개를 저었다. 울먹이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난. . . 난. . . 아무것도 없어요. 그녀에 대한 기억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요. 그녀는. . . 어쩌면. . . 제 전부였는데. . . 난. . . 아무것도. . . 아무것도.”

보다 못한 경찰관이 신발을 벗고 개울로 들어와 소년을 끌어냈다. 경찰관이 소년의 손에서 소녀의 부서진 머리를 뺏어 들었다. 변호사가 소년을 안아주었다.

“사고야. 모든 것은 사고야. 너는 나랑 같이 집으로 돌아가면 돼. 그리고 모든 것을 잊으면 돼. 그러면 돼.”

소년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변호사는 곤혹스런 표정으로 경찰관을 쳐다보며 억지로 웃었다.

숲은 서서히 어둠에 물들었고 소년은 계속 그렇게 울고 있었다.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시간의 흐름과 함께 소년도 성장했다.

흐르는 물에 몸을 실은 낙엽처럼.

바람을 타고 하늘을 가르는 깃털처럼.

소년도 시간의 흐름을 타고 멀리까지 왔다.
-「까만 섬」에서 와닿는 본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