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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는 새 책 읽기

지옥 같은 연애 성공기 <파블로프의 아가씨>

by jeroni 2012. 9. 14.


                                                    단이내 <파블로프의 아가씨>




오늘도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며 “예수를 믿으면 천당 갑니다.” “교회를 다니지 않으면 지옥 갑니다” 라고 확성기로 떠드는 전도인들을 만난다. 카뮈는 신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지만 자신은 관심이 없다고 말했던가. 그리고 공자는 삶도 모르는데 죽음을 어찌 알겠는가 라고 했다지. 이렇게 말하면 기독교도들의 원성을 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지옥도를 보여주자고 한다. 참고로 소개하고자 하는 《파블로프의 아가씨》라는 이야기 속에는 교회를 열심히 다녔어도, 운이 나빴거나 사자(使者)들의 코드 분류 오류 탓인지 지옥에 가는 이들이 생기는데...

 


                                


▶착하게 살아도 지옥 가는 경우가 있다

선량한 시민에 납세 의무도 꼬박꼬박 지키며, 특별한 병치레 없이 살다 23살 팔팔한 나이에 재수에 옴 붙을 사고로 불현듯 사망한 시연. 그런데 지옥에 와 있다. 그녀는 자신이 지옥에 떨어질 만큼 살아서 나쁜 짓을 일삼았는지 불만이고, 죽었음에도 어째서 아직도 감각이 생생한 건지 도통 모르겠다. 이제 전생이 돼버린 삶에는 미련도 없고 원망도 없지만, 죽었으면 고이 영면이나 취할 것이지 왜 지옥 한가운데서 깨어나서 이따위 고생을 해야 되냐고... 시연은 어처구니가 없다. 그런데 자신을 지옥의 주인이라 자칭하는 섬뜩한 진주색 눈을 한 위협적인 놈이 그녀 앞에 뒤늦게 모습을 드러낸다. 바로 지옥의 주인인 라야. 놈은 ‘넌 내가 정해놓은 그대로의 삶을 살다 여기로 돌아왔어. 그러니 앞으로도 그래야 정상이지 않아?’ 라고 묻는데. 녀석은 그녀의 죽음에 대해 꽤 정확하게 알고 있다. 만취 중 주정부린 것도 모자라 구토까지 하다가 차에 치여 죽은 사실까지. 시연은 그런 꼴로 자신을 비참하게 죽도록 오래 전부터 운명을 예정해둔 이가 바로 라야임을 깨닫고 항의한다. 하지만 ‘데스노트’라도 되는 듯 자신이 예정해놓은 인간들의 운명을 한 치도 거스르지 못하겠다는 오만한 완벽주의자에, 생긴 것까지 번지르르한 꽃미남(?) 염라대왕의 태연함. 그녀는 기가 막히다. 하지만 힘의 우위는 이미 갈렸다. 미천한 일개의 영혼이 광활한 지옥의 주인인 녀석과 대결하기엔 역부족.

   

▶지옥을 여행하는 여행자를 위한 가이드 북

이 책에는 낯선 지옥도가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혹시라도 착하게 살았거나 나쁘게 살았든 운 나쁘게 지옥에 떨어진 이들을 위한 팁을 제시하고자 한다.

 

“지옥에서 가장 주의하고 피해야 할 것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번개가 내리치고 하늘이 붉어지면 무차별적으로 떨어지기 시작하는 가시바늘들이고, 둘째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나타나 모든 걸 불태우는 불길을 동반한 사나운 모래폭풍이다. 그리고 마지막 셋째는 영혼이라면 누구든 가리지 않고 먹어치우는 도살자들.

염소와 개, 그리고 사람을 억지로 섞어놓은 듯이 괴이한 생김새를 한 도살자들은 커다란 덩치만큼이나 많은 영혼들을 먹어치운다. 그들은 대체로 무리지어 생활하며, 움직임이 둔한 대신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가지고 있다. 이곳에서 그들은 최상위 포식자였고 우리는 먹잇감이었다...”

_본문

 


                                              

 

 

▶죽음은 또 다른 시작에 지나지 않는다.

“악!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아.” 나는 대뜸 비명을 내지르고 바닥에 드러누웠다. 역시 이승이든 저승이든 삶이란 녹록지 않구나... 이곳에서의 죽음은 다양하다. 영혼이 파괴되는 것만이 죽음인 건 아니다. 라야는 말했다.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도 죽음이라고(본문). 유추하면 이승에서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도 이미 죽음이다. 그런 이들에겐 이미 이 이승이 지옥일 터이니. 굳이 고생하며 지옥까지 갈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렇다고 이승이 지옥이라고 지옥행을 마냥 거부하지는 말길. 지옥에서의 죽음은 또 다른 고통 없는 영원한 죽음인 경우도 있지만, 어떤 또 다른 ‘피안’이 기다리고 있으므로... 작가는 지옥에서마저 죽으면 어떤 피안이 기다리고 있는지는 작품의 말미에 멋지게 숨겨 놓고 있다.

 

▶지옥도 때론 아름다울 수도 있는가.

 

“어째서 여길 지옥이라고 부르는 걸까.”

품에서 바르작대는 아이를 끌어당겨 안고서 나는 가만히 중얼거렸다. 등에 닿는 나무의 기둥은 암벽처럼 단단하고 굵었다.

모르는 척 라야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자 절로 눈꺼풀이 내려갔다. 흔들리는 시야 너머로 붉은 빛깔이 춤추듯이 아른거렸다.

나무 바깥의 영역에서 불어 닥치는 맹렬한 돌풍이 간헐적으로 기묘한 모양을 만들어내는 걸 나는 잠시 지켜보다가 문득, 라야가 내 말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_본문 중에서

 

이쯤에서 보면 지옥이란 종교적 전통에서 보여주는 형이상학적 영역이면서도, 개개인의 각자의 상상의 영역일 수도 있다는 걸 암시하는 듯하다. 이승에서 그것을 이용하려는 교만한 자들의 입장이든 아니든. 동서고금의 인과응보 논리의 귀결로서 선악의 개념이든 아니든.

신이 어떻게 태어나는지는 잘 몰라도 믿음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것만은 확실한 듯하다, 라고 작가는 말한다. 그리고 미천한 우리로선 알 수 없지만, 천국이나 지옥의 주인은 우리가 모르는 것들을 분명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이 취하기를 허락하지 않은 금단의 지식들까지 알려고 하는 자는 분명 대가를 치른다. 그 영역은 놀라운 속도로 존재의 비밀의 꺼풀을 벗겨내는 과학의 영역과도 별개이다. 종교란 지식이나 학문이 아닌, 믿음의 영역이므로. 그러므로 진리와는 별개로, 인간이 존재하는 한 천국과 지옥은 여전히 인간의 ‘마음속’에 존재할 것이다. 그렇다면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사랑의 마음이 보이지 않지만 개개인들의 마음을 충만하게 하고 생의 의지를 주고 실제로 우리 몸속에 아드레날린과 엔도르핀을 분비시키는 것처럼.

파블로프의 아가씨가 여행하고 정착한 지옥에는 세계수(世界樹)가 있는데, 그것의 열매는 탐스럽고 비밀스럽다. 그것은 “욕망의 결정체이며. 누구라도 매혹될 만한 탐스럽고 먹음직스러운 열매”라고 작가는 말한다. 작가는 지옥 같은 곳에도 사랑과 자비가 존재할 수 있으며, 사랑과 깊은 이해와 교감이 없는 곳이 바로 지옥임을 탐스런 진리처럼 말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너무 진지해지지는 말자. 작가가 초대한 세계로 우린 여유로운 마음으로, 섬뜩하지만 유쾌한 지옥을 잠시 체험하고 돌아오면 그 뿐이다. 그것만으로 지옥은 충분하니까.